Jack-Kevorkian

You Don’t Know Jack, 2010

죽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선택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생명에 대한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일까?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태어날 선택지를 주지 않으셨듯이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어떠한 권리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만약 최후의 순간 환자가 죽음을 바란다면 의사는 마지막까지 환자의 고통을 묵인하고서라도 오로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혹여나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원한다고해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 심리상태를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이러한 물음들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안락사를 행하는 의사를 살인자라고 할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물음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도덕적인 물음에 ‘예’라는 판결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1998년 미국에서 130여명의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시술한 잭 캐보키언이라는 병리학자가 환자에게 직접 독극물을 주입하여 사망하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시술하여 법원에서 2급 살인죄로 25년 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유 돈 노 잭>은 바로 이 사건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미국 법원은 잭이 의사로서 행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은 철저히 배제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절대 가치 아래엔 그 누구도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냉정한 판결을 내린다. 영화 막바지에 극적으로 공개되는 이 판결문을 통해 영화의 주제는 ‘안락사’를 뛰어넘어 민주주의 헌법이라는 태두리안에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만큼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이른바 ‘미국식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이 옳고 그른지의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또한 전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길 원한다. 지금의 사회는,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소유하는 법만을 가르치고, 강요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이란 ‘죄’와 같으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법을 스스로 경험하여 채득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삶이란 상실의 연속을 견디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어쩌면 잊혀진다는 것, 무언가를 잃어간다는 것은 인간이 체험할 수있는 가장 큰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상실감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처방은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 돈, 그리고 죽음조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모든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What is war? Is it a soldier dying, or guns, or bombs, or crosses, or weeping mothers, or sport, or patriotism, or valor, or high paying jobs? What is war? Not hell. For that is merely evil. War is worse than evil. It is mind-boggling suicide –mass suicide– with humankind devouring or trying to devour itself…How long will we persist in this lethal nonsense?
—  Dr. Jack Kevork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