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그럼 도대체 어떤 나라들이 출산율이 낮은 것일까? 크게 보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일정한 소득수준을 넘어선 나라들 사이에서는 문화와 정책의 차이에 의해 커다란 편차가 나타난다. 우리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들은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 홍콩으로서 이들이 모두 동아시아의 부유한 경제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사회복지가 부실하여 아이 낳아 기르기가 부담스럽고, 여성차별 때문에 출산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파업으로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곧 나올 책을 홍보하기 위해 온라인 신문에 실린 기사를 네이버 도메인으로 소개한다. 광고하는 주체가 마치 자신들은 상관없는 척 숨기며 광고하는 전형적인 스타일.

3.11 후쿠시마와 동아시아의 평화

작성자 : 아키야마 나오에 (시나노마치 교회)

번역 : 홍신해만

 1. 들어가며

 

 3월11일 동일본대재앙 피해자 지원을 위해 보내주신 서울노회 많은 도움의 손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감사할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가신 한국 분들이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일본정권을 규탄하는 수요 집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3.11이후에는 수요 집회 모임에서 일본 대사관을 향해 재앙에 “지지마. 힘내라.” 라고 외쳐주시고 있다는 것을 집회 장소에서 함께 있던 재일 한국인 여성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위안부로 고통 받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기엔 저희에게 아직 해결해야만 할 깊은 물음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하시고,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함께 고난 받으시고, 우리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주시는 예수께서 그곳에 계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11 대지진・쓰나미가 발생해 후쿠시마 제 1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방사선물질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이 원전사고는 인재이며, 일본정권과 도쿄전력주식회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도 원자력발전에 동참하면서 이러한 심각한 사고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원자력발전소 폐기운동을 충분해 하지 못하였습니다. 죄송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서, 정치・경제・사회에서 마땅히 행해 져야 할 이치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았고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전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1945년 8월, 근대 일본이 내세웠던 ‘부국강병’이라는 국책을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은 채 계속 추구해온 잘못이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는 서구의 17세기 과학혁명이 제시한 길, 즉 신(神)을 대신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사고로 명확히 드러난 것

 

 9월19일 도쿄에서는 ‘원전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집회가 개최되어, 6만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에서 후쿠시마에서 온 한 여성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진실은 은폐되었다’, ‘국가는 국민을 지킬 수 없다’, ‘사고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후쿠시마현 사람들은 핵의 실험재료가 되었다’, ‘막대한 방사성의 쓰레기가 남았다’, ‘커다란 희생위에 원자력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들은 버려졌다.’ 등의 이러한 말들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아픔과 슬픔에 깊은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들을 바보취급 하지 마라’, ‘우리들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마라’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번 원전사고와 관련한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이 사건들과 관련한 몇 가지를 전합니다. 

 

 (1)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선물질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300발분 이상의 양입니다. 바다에 방출된 양을 포함하면 더욱 그 양은 더욱 많습니다. 원자로 내에는 아직 사고처리가 되지 않는 채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0발분의 방사선물질이 남아있습니다. 체르노빌사고(1986년) 때에는 수증기 폭발이 일어났는데, 후쿠시마에도 이와 같은 수증기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또 만약 수증기 폭발이 일어난다면 도쿄수도권은 파멸 되어 3000만 명이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국의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더욱더 위험한 것은 해변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입니다. 이 원전은 부산으로부터 200Km 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만약 폭발사고라고 일어난다면 한국에 있는 분들 또한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일본정부・도쿄전력 등의 원전관계자들은 방사선물질방출에 대해서 ‘당장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 ‘체르노빌사고의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단기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급성 피폭 장애’ 는 없었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분명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아직 가동 중에 있고, 체르노빌사고 보다 많은 방사능물질을 유출시킬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에 ‘체르노빌의 십분의 일’이라고 한다 해도 구소련과 일본의 인구밀도를 비교한다면, 전혀 안심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급성피폭에 의한 사망자는 없습니다만, 정부는 사고 발생 직 후 20km권내의 주민들을 대상으로만 강제피난을 실시했습니다. 결국 내버려진 입원환자 45명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또한, 지진・쓰나미에 의한 행방불명자 수색작업이 포기되어 구출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사고로 인해서 삶의 터전이 파괴된 몇몇 주민과 노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4) 문부과학성은 4월, 어린이들의 허용 피폭량을 18세 이하의 소년, 소녀들이 종사해서는 안 되는 방사선 관련시설에서 일하는 방사선종사자의 허용 피폭량 (일반 공중시설의 20배)과 같은 수치로 발표하였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방사선 영향은 성인의 3~10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방사능에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항거하고 있습니다. 문부과학성에 항의가 쇄도하자, 결국 말을 바꾸어 종래의 일반 공중시설의 허용량을 목표로 하자고 정정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공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 허용량을 넘어서버린 지역도 많습니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제일로 고려한다면 피난시키는 것이 마땅한데, 정부에서는 이를 실천하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5) 정부・도쿄전력・원전 관련자들은 정보를 조작하고 날조 했습니다. 그들은 ‘지진 발생 후, 곧바로 원자로는 긴급 정지 했습니다만, 예상치 못하게 쓰나미에 의해서 사고가 일어났다’ 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미 최초 발생한 지진으로 배관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쓰나미로 비상용전력이 상실되지 않았어도 냉각은 불가능했다고 하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지진의 최대 규모는 매그니튜드 8.4라고 상정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지진은 매그니튜드 9.0으로 상정 할 수 없는 범위였습니다.’라고 대외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8.4와 9.0은 특별한 계산식으로 산출한 숫자로 의도적인 날조입니다. 이번 쓰나미 역시 과거의 일어났던 규모로 상정 할 수 없는 범위라는 말은 말할 수 없다는 견해가 유력해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안전대책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느슨한 견적을 적용했습니다. 일본열도 주변은 세계적으로 큰 지진이 일어나는 특별지대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54기의 원전을 건설해왔습니다. 한국에는 원전 21기(건설 , 설계 중에 있는 것은 13기)가 있습니다. 이 역시 결코 안심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 정권・전력회사・원전관계자는 지금까지 원전은 ‘절대안전’, ‘클린에너지’, ‘다른 에너지 발전과 비교했을 때 저렴하다’, ‘원전이 없으면 전력이 부족하다’ 라고 하며, 반 원전을 주장하는 전문가와 운동들을 억압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에 와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절대 안전’이 거짓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전력부족’도 절전만 하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절전하지 않아도 수력과 화력발전의 가동률을 올리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현재 원자력을 1970년의 3배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력낭비입니다.  원전을 이용한 발전은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원전을 건설하고 가동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클린 에너지’라는 말도 거짓입니다. 오히려,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서 대량의 해수를 끌어들여, 온도를 7도나 높여 다시 바다로 계속 흘려보내 지구온난화를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안전하다’도 거짓입니다. 동해 해안선에 있는 몬주 원전은 사고가 일어난 지 15년 가까이 가동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유지관리비로 매일 5500만 엔 (연간200억 엔)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오모리현 롯카쇼 핵재처리공장의 건설・가동비는 당초 7600억 엔으로 측정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19조 엔이 든다고 합니다. 게다가, 히로시마 원폭 120만발 분의 방사성폐기물이 비축되어있고, 1%라도 방출된다면 500km 떨어진 도쿄 역시 급성피폭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폐기물은 이후에도 대량으로 방출되어, 몇  십년, 몇 백년에 걸쳐 처리비를 들여야 함으로, 엄청난 비용이 든 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7) 원전은 정권・정계, 대기업・재계, 관료기관, 어용학자, 그리고 사법부까지 유착하여 추진되어 왔습니다. 전력회사, 원전메카와 그들에게 융자를 해준 대 은행, 막대한 광고 선전비가 나간 매스컴, 그리고 건설공사와 운영을 행하는 종합건설회사 등, 원전관련기업은 일본경제의 60%를 지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법부는 심각했던 스리마일섬사고 (1979년)와 체르노빌사고가 일어난 것에도 아랑 곳 않고, 원전은 위험하니까 설치에 반대한다는 주민소송에 대해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하는 정부・기업의 입장을 내세워, 모든 주민 측 소송을 패소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번 원전사고이후에도 그들은 지금까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일절표명하지 않고 오히려 원전을 추진해야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3. 원전은 ‘일류군사국가=핵병기보유’가 되기 위한 것이다.

 

 거짓말을 계속 해가며 힘으로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하면서 까지, 정계・관료・재계・학자가 일치단결해서 원전을 추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전설계의 제일 목적이 에너지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핵병기소유를 위한 것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전설계로 인해 막대한 이권・금전적 이익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몬주는 사고가 일어나 결국 가동하지 않은 채 노후화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비상시에는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충고에도 폐기시키지 않고 추진을 계속 하는 것은 고성능소형핵폭탄에 사용하는 고순도 플루토늄을 생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원전도입을 위해 조사・연구예산을 국회에서 결정한 것은,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가 UN총회에서 ‘핵의 평화사용’이라고 하는 강연을 한 다음인 1954년입니다. 그 제안과 취지는 ‘미국의 구식 병기를 대여를 지양하기 위해서도, 신병기와 원자병기를 이해하고, 이것을 사용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선결문제다’ 로 설명됩니다. 핵병기보유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자도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키시 수상은 1957년 정부의 입장을 ‘자위대의 범위는 핵보유는 가능하다’이라고 발언하였고, ‘원전 기술이 진보하면, 병기로서의 가능성은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핵병기보유의 잠재적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국제적 자리에서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원전은 필요하다.’라 표명하였습니다. UN안전보상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구소련) 5대국에 이은 대국에 일본을 합류시키기 위해서는 핵병기보유의 잠재가능성, 다름 아닌 원전설치가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핵 비확산조약(NPT)‘는 1964년까지 5대국가 모두가 핵병기보유를 실현하고, 핵독점을 논의하기 하기위해 UN에서 채결되었고 발효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와 맞물린 시기인 1969년, 사토정권은 ‘핵병기보유에 대해서 NPT에 참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계없이, 핵병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핵병기제작의 경제적・기술적 잠재성은 항상 보유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또한 ‘핵병기 일반에 대해 정부 정책은 국제정치・경제적인 이해손실계산에 기초할 것을 국민에 발표한다.’ 고 입장을 표명 했습니다. 이는 곧 국민들에게 대해서는 핵병기를 보유 하겠다고 가르치는 것이며, 핵무기=원자력체제를 유지하고 확충하는 정책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위로부터 알 수 있듯이, 원전이 위험성을 가지고 있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국책으로 원전을 유지시키는 이유는 에너지 재원문제이전에 핵병기보유, 핵무기를 위한 잠재적 능력, 즉 군사력에 의한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4. 원전은 ‘국내식민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을 소유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도쿄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도쿄전력은 18기의 원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만, 후쿠시마 현 처럼 원전 우선설계지역에는 전기를 전혀 공급해 주지 않으면서, 정작 원전 설치는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인구가 밀집하고 있지 않은 지역에 떠맡기고 있습니다. 이은 사고발생시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근대 일본의 국가성립부터 오늘날까지 후쿠시마 현은 군대와 식량, 석탄 등에 관한 일체를 떠맡았고, 석탄폐광 이후에는 원전을 받아들여, 공장에 노동자를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전입지지역은 많든 적든 사람과 식량 그리고 에너지를 대도시와 대기업의 부를 위해 공급하는 공통 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국내식민지’ 라 말할 수 있습니다.

 

 원전을 받아들이면 많은 돈이 원전지역에 지불되어, 고용확보가 이루어 졌다고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농림산업으로 지역의 자원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발전시켜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던 삶들은 제거되었습니다. 원전지역 사람들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주어지는 돈에 종속되어, 그 돈을 계속해서 받기위해 원전설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 위험을 감수하고 원전을 받아 들여 온 지역행정단체와 주민의 책임도 분명히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경제성장이 최고선이라고 추구해온 국가와 대기업에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에 편승하여 돈과 사치품을 소유하는 것이 ‘풍요로운 생활’이라고 생각해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욕망을 추구해 생명을 유지시키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어업을 경시한 결과 ‘식민지화’ 되어버린 우리들 도시주민에게도 그 지역의 미래를 파괴해온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차별과는 별개로 사회적 차별에 관한 문제가 있습니다. 오염수 등을 걸레로 닦는 등, 원전내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다량의 피폭을 당하고 있으며 회사로부터 차별 받고 있습니다. 원전은 사회적 차별구조를 만들어 냈고 그 구조에 의존하여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서울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은 일본이상으로 높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또한 원전이 설치되고 있는 농어촌지역과 서울 등의 대도시와의 관계는 아마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서울노회와 동경북지구선교협의회의 테마는 ‘현대사회의 신음에 응답하는 교회-갈릴리의 예수를 생각하며…’였습니다. 여기서 ‘갈릴리’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 세계에서 국내식민지였습니다. 우리들은 ‘갈릴리의 예수를 생각하며’를 떠올릴 때, 후쿠시마를 시작으로 ‘국내식민지’가 확산되어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5. ‘자연 재난’과‘원전재해’

 

 3.11의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가족, 집, 논밭, 일터가 사라지고, 새로운 생활을 재건해가는 것 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장래를 위해 부흥, 재건계획에 협력하고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친 지원이 필요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도 자연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엔 부활하고 부흥해가겠지요. 지진, 쓰나미에 의한 자연의 ‘재앙’을 인류는 언제나 경험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은 천년이상 전부터 몇 번이나 대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에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진행이 멈추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는 위대한 자연에 의해 특별히 일어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지, 이번 사고는 그러한 자연이 가져다준 재앙에 대한 방어가 잘 되어있지 않아 피해와 손실이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지진 피해는 ‘전대미문’ 피해라고 합니다만, 지진과 쓰나미는 과거에 이미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원전사고가 ‘전대미문’의 피해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최대의 재앙입니다. 그것도 인류 400만년의 역사에서 10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나타난 ‘원자력’에 의한 피해이입니다. 「 ‘원자력=핵병기·원전’으로 이어지는 생각이 처음으로 다루어진 때는 17세기 과학혁명입니다. 과학혁명의 기본 사상은 인간이 신 대신에 자연을 지배하고 제어하고,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화력, 수력, 풍력 등의 활용은 인류가 자연과 함께 사귀는 가운데 경험해온 것을 짓밟고 획득해온 기술입니다. 원자력은 순수이론에 의한 기술로, 원자력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예측불능이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방사성물질에 의한 피폭은 사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방사선에 의한 DNA파괴는 모든 생물에 영향을 끼칩니다. ‘하늘의 새, 들에 꽃’도 작은 벌레도, 모든 피조물이 피폭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원전은 ‘국내식민지’라고 하는 차별구조를 국책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국내식민지는 전에 선교협의회에서도 함께 논의한 오키나와가 딱 들어맞는 예입니다. 미일안보체제는 오키나와에 군사기지를 떠넘기다 시피 형성되어, 오키나와 본래의 평화로운 사회와 미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원전추진의 목적은 핵보유에 의한 안전보장에 있고, 미일정부는 오키나와 뿐 만 아니라 원전추진에 관한 핵보유 목적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전을 폐기하는 것은 환경문제 일 뿐만 아니라, 전쟁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본정권과, 원전기업은,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났음에도 국내원전유지와 추진을 목표로 할 뿐 아니라, 해외에도 원전수출을 계속 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함께 원전수출 부분에서 경합하고 있는 한국정권과 기업은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일본 원전의 국제적 신뢰성이 저하된 상황을 사업적인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원전을 가진 중국, 러시아 이외에 인도,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 되었고, 또한 원전을 가진 일본, 한국, 북한, 대만, 러시아를 생각하면, 위험성을 내포한 원전수출은 ‘사고’가 일어났지만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6. ‘3.11 후쿠시마’로부터 ‘동아시아 평화’를 향하여

 

 서울노회와 동경북지구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선교협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원전은 이와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3.11 후쿠시마’를 경험한 우리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길을 위해 몇 가지 과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 1기만으로도 심각한 환경파괴와 신체적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그리고 핵병기보유를 가능하게 하는 원전을 모두 폐기하고, 탈 원전사회를 실현할 것. 동시에 원전수출에 반대 할 것.

 * 경제성장이 풍요로운 생활을 만들어 낸다는 ‘성장신화’로부터 벗어나, 환경보존과 자원 절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어 ‘만족을 아는’ 경제생활, 환경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경제생활을 실현 해 갈 것.

 * 도시와 농어촌의 공생을 실현해 갈 것. 특별히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식량을 생산 할 사람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적절하게 소비하는 ‘지생지소(地産地消)’를 실현해갈 것.

 * 군사력, 핵우산(核雨傘)에 의한 국가안전보장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민중들이 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외된 곳으로 쫓겨난 사람들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상호신뢰를 구축 할 것. 그리고 인권, 자치권의 보장, 반전, 반군사화, 환경보전, 성 평등 등을 기준으로 민중연대, 지역협력에 의한 ‘동아시아 평화’를 실현해 갈 것.

 

 아마 이러한 과제들은 우리들 안에서 나름대로 깨달아 추구하는 것이 대부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과제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문제는 인식한다 해도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3.11 이후로 우리들은 이 과제를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과 공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3.11 후쿠시마’에 의해 나타난 것을 신앙의 문제와 과제로 붙잡고, 사회적입장의 차이와 신학적 성서적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행동하고 함께 결실을 맺어갈 것에 힘을 모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시나노마치 교회에서는 피해자지원을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동시에  원전문제에 대한 학습강연회와 영상학습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예배 설교에서 탈 원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해갈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번에 진행한 교회수련회의 테마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한데 모아, 교회가 성명(신앙고백)을 내고 전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현재 원전사고피해지구의 주민과 연대하여 아이들에게 식량지원, 탈 원전, 반 원전 수출운동을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작은 활동이지만 여러 교회, 지역, 분야에서 연대한다면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한일병합 100년, 금년은 한국 ‘민주구국선언’ 35년 째 되는 해 입니다. 저희는 일본이 한국에 행한 침략과 억압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1970년대 중반이후로 한국 민주화 운동에 기독교인을 한일민중이 연대하고 협력한 사실에 근거해서, 동경북지구와 서울노회 교류를 개시한지 10년이 되는 이때 3.11이전과 다른 새로운 현대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양측 교회가 새로이 연대, 협력해 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소개한 후쿠시마 여성의 발언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마칩니다. 

 

 <우리들은 편리와 발전이 차별과 희생 위에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류는 지구에 살아가는 한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종족의 미래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생명체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이 지구라고 하는 아름다운 별과 조화롭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생명이 되고 싶습니다. 에너지를 소중히 사용하고, 지혜가 가득하며, 풍요롭고 창조적인 생활을 영위 해나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원전과 반대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수 있을까? 누구도 명확한 답은 모릅니다만, 누군가가 정한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심으로 생각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결단해서 행동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 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전을 다시 진행시키려고 하는 힘이 뻗쳐 온다면, 힘을 합쳐 맞서 싸워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매우 무겁고, 가혹하지만, 눈을 돌리지 말고 함께 짐을 지고, 한층 가볍고 밝은 삶을 향해 나갑시다.>

 


 

「3.11フクシマ」と「東アジアの平和」

 

作成:秋山 眞兄
 翻訳:ホンヘマン

1.はじめに

 3月11日の東日本大震災による被災者支援のために、ソウル老会から多額の義捐金をいただき感謝申しあげます。また、アジア太平洋戦争時に強制的に「慰安婦」にさせられた韓国の方々が、日本政府が謝罪も賠償もしないことに対して在ソウル日本大使館に定期的な抗議行動(水曜デモ)をなさっておられますが、3.11後に日本大使館に向けて「震災に負けるな、がんばれ」と叫んでくれたことを、その場に一緒にいた在日韓国人女性から伺いました。元「慰安婦」の方の思いには、感謝ということでは済ますことのできない深い問いが、私たちに突きつけられていると思いました。同時に、悲しみをともに悲しみ、苦しみをともに苦しみ、喜びをともに喜ぶ主イエスが、そこにこそ居られると思わ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

 3.11大地震・大津波が引き金になったとはいえ、福島第1原子力発電所の事故によって放射線物質を世界中にばら撒く深刻な事態を引き起こしたことをお詫びいたします。この事故は人災であり、日本政府と東京電力株式会社(東電)に第一の責任があります。しかし同時に私もまた、反原発運動に参加しては来たものの、このような深刻な事故は実際には起こらないであろうと思い、原発廃絶のための行動を十分にしてきたとはいえず、申し訳なく思います。

 

 福島原発事故によって、私たちに政治・経済・社会のあり方を根底的に見直し、転換す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ます。日本の文脈でいえば、近代日本国家が国策としてきた「富国強兵」が、1945年8月に根底的に問われたにもかかわらず反省することなく継続され、それが今回の事態を招いたといわなくてはなりません。世界の文脈でいえば、西欧の17世紀科学革命に依拠したこれまでの人類の歩み、すなわち、人間が自然を支配し管理するという、人間が神に成り代わろうとしてきた傲慢な考え方の帰結だといえるでしょう。

 

 

2.福島第1原子力発電所事故で明らかになったこと

 9月19日東京で集会「原発のない社会をつくろう」が開催され、6万人余りが集まりました。その集会で、福島から駆けつけた女性が次のように発言しました。

<原発事故から半年経つ中で、「真実は隠される」「国は国民を守らない」「事故は未だに終わらない」「福島県民は核の実験材料にされる」「莫大な放射性のゴミは残る」「大きな犠牲の上になお、原発を推進しようとする勢力がいる」「私たちは棄てられた」ということが鮮明になってきました。私たちは疲れと悲しみに深いため息をつきますが、同時に「私たちをばかにするな」「私たちの命を奪うな」と叫びたいのです。>

 

 ここには、今回の原発事故によって露にされた事柄が凝縮されて表現されていますので、これに関連した幾つかのことを述べておきます。

(1)福島原発事故で大気中に放出された放射線物質は、1945年8月広島に落とされた原子爆弾300発分以上のものです。海に放出された分を入れるとさらに大幅に増えます。原子炉内には広島原爆1000発分の放射線物質が残っています。しかも、事故は収束していません。チェルノブイリ事故(1986年)と同じ水蒸気爆発が起こらないとは言い切れず、もしこれが起きれば東京首都圏は壊滅状況、3000万人が避難しなくてはならなく、日本壊滅の可能性があります。日本で最も危険である玄海原発は釜山から200kmしかなく、もしそれが爆発事故を起せば、韓国の皆さんに甚大な被害を与える可能性があります。

 

 

(2)政府・東電など始めとする原発関係者は、放射線物質放出について「直ちに健康に影響はない」「チェルノブイリ事故の10分の1でしかない」と説明しています。しかし、短時間で死にいたる「急性被曝障害」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今後深刻な被害が出てくることは明らかです。福島原発は未だ収束しておらず、チェルノブイリ事故より多くの放射性物質を流出させる可能性がかなりあります。たとえ「チェルノブイリの10分の1」としても、旧ソ連と日本の人口密度を比較すれば、安心することはまったく出来ないことは明らかです。

 

(3)急性被曝による死者はいませんが、事故発生直後に20km圏内の住民が強制避難をさせられ、そのために置き去りになった入院患者45名が亡くなりました。また、地震・津波による行方不明者捜索が放棄されたために救出できなかった人々がいますし、事故によって暮らしを破壊され何人もの農民や老人が自死しています。

 

 

(4)文部科学省は4月に子どもの許容被曝量を、18歳以下が従事してはならない放射線関連施設で働く放射線従事者の許容被曝量(一般公衆の20倍)としました。子どもへの放射線の影響は大人の3〜10倍といわれており、子どもを放射能から護るどころか、放射能に積極的に晒そうとさえする暴挙です。文部科学省に抗議が殺到し、従来の一般公衆の許容量を「目指す」と訂正しました。しかし、子どもが生活していて、その許容量を超えてしまう地域は多数あり、子どもの安全を第一に考えるならば避難させるべきですが、政府はそれを実施しようとはしていません。

 

(5)政府・東電・原発関連者は情報操作、捏造を行いました。「地震発生後、直ちに原子炉は緊急停止したが、『想定外』の津波によって事故が起きた」と説明していますが、最初の地震で配管が破壊され、津波で非常用電源が失われなくても冷却は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明らかになってきています。

 

 

「地震の最大規模はマグニチュード8.4と想定していたが、マグニチュード9.0で想定外であった」と説明していますが、8.4と9.0は別の計算式で出した数字で意図的な捏造です。津波も過去に既に起きている規模であり、想定外とはいえないとの見解が有力になっています。いずれも安全対策費用を減らすために意図的に甘く見積もったのです。日本周辺は世界でも大きな地震が起きる特別地帯にもかかわらず54基もの原発を建てています。韓国には原発21基(他に建設中・計画中13基)があり、決して安心はでき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6)政府・電力会社・原発関連者はこれまで、原発は「絶対安全」、「クリーンエネルギー」、「他の発電に比べて安い」、「原発がないと電力が不足する」といって、反原発を主張する専門家や運動を押さえ込んできました。しかし、全て嘘であることが今回はっきりしたといえます。「絶対安全」が嘘であることは明白です。「電力不足」も節電すれば不足しないことが明らかになりましたし、節電しなくても水力・火力発電の稼働率をあげれば十分まかなえます。しかも、現在の電力使用量は1970年の3倍も使用しており、電力浪費といわざるを得ません。「クリーンエネルギー」も、原発の発電そのものでは地球温暖化の主原因とされているCO2を排出しませんが、原発を建設し稼動させる過程で大量のCO2を排出します。しかも、原子炉を冷やすために多量の海水を取り込み、温度を7度高くして再び海に流し続けており、地球温暖化を進めています。

 

 

「安い」も嘘です。東海(日本海)沿岸にある「もんじゅ」原発は事故を起してから15年近く稼動していませんが、維持管理費で毎日5500万円(年間200億円)が使わぜ碣��ています。青森県六ヶ所核燃料再処理工場の建設・稼動費は当初7600億円とされましたが、今では19兆円かかると公表しています。しかも、すでに広島原爆120万発分の放射性廃棄物が貯まっており、その1%が放出されれば500km離れている東京でも急性被曝地域となる可能性があります。そして、廃棄物は今後も大量に生み出され、何十年、何百年もかかる処理経費をあわせれば、とてつもない費用がかかることは自明です。

 

 

(7)原発は政府・政界、大企業・財界、官僚機構、御用学者、そして司法までが癒着して推進してきました。電力会社、原発メーカー、それらに融資する大銀行、莫大な広告宣伝費が流れるマスコミ、建設工事・維持を行うゼネコンなど、原発関連企業は日本経済の60%を支配しているといわれています。司法は、深刻なスリーマイル島事故(1979年)やチェルノブイリ事故が起きたにも関わらず、原発は危険であるから設置反対であるとの住民訴訟に対し、原発は絶対安全という政府・企業の立場に立って、全て住民側を敗訴させてきました。そして今回の事故後も、彼らはこれまでのことは間違いであったとは一切表明していませんし、さらに原発を推進しようとさえしています。

 

3.原発は「一流軍事国家=核兵器保有」となるためである

 嘘をつき続け、力で反対者を排除してまで、政界・官僚・財界・学者が一体となって原発を推進する理由は、原発設置目的の第一がエネルギー問題の解決ではなく、核兵器所有のためであり、またそれによって莫大な利権・金儲けが生まれるからです。

 

前述した「もんじゅ」は事故ばかり起こして稼動しないまま老朽化し、専門家から非常に危険であるといわれても廃炉にせず維持し続けているのは、高性能小型核爆弾に用いる高純度プルトニウムが生産できるからです。

 

 

 

 日本が原発導入のための調査・研究予算を国会で決定したのは、米国大統領アイゼンハアーが国連総会で「核の平和利用」という演説をした翌年1954年です。その提案趣旨説明で「米国の旧式な兵器を貸与されることを避けるためにも、新兵器や原子兵器を理解し、これを使用する能力をもつ事が先決問題である」と、核兵器保有がまず重要な目的であると述べています。原発導入を本格的に開始した岸首相は1957年政権についた早々、「自衛権の範囲なら核保有は可能」と発言し、「原発の技術が進歩されるにつれて、兵器としての可能性は自動的に高まってくる。核兵器保有の潜在的可能性を高めることによって、国際の場における発言力を高めることが出来る」と語っています。国連安全保障常任理事国のアメリカ合衆国、イギリス、フランス、中国、ロシア(旧ソ連)の5大国に並ぶ大国に日本をするには、核兵器保有の潜在的可能性、即ち原発設置が重要な鍵と考えていたのです。

 

1964年までに5大国全てが核兵器保持を実現し、核独占をはかるための「核不拡散条約(NPT)」が国連で採択され発効に向けて進んでいた1969年、佐藤政権は「核兵器については、NPTに参加すると否とにかかわらず、当面核兵器は保有しない政策をとるが、核兵器製造の経済的・技術的ポテンシャルは常に保持する」、さらに「核兵器一般についての政策は国際政治・経済的な利害損失の計算に基づくものであるとの趣旨を国民に啓発する」としました。すなわち国民に対しては核兵器非保有と決めるべきではないと教え込み、核武装=原子力体制の維持・拡充の政策を明確にしたのです。

 

 以上から分かるように、危険かつ多額な経費がかかることが分かっても、国策として原発を維持させようとしているのは、エネルギー資源問題以前に核兵器保有、核武装のための潜在的能力、すなわち軍事力による国家安全保障のためという考えを持ち続けているからです。

 

4.原発は「国内植民地」を生み出している

 事故を起した福島第1原発を所有する東電は、東京首都圏を中心にした地域に電気を供給しています。東電は18基の原発を所有していますが、福島県を始め設置地域には電気を一切供給しておらず、原発を大都市から離れた人口が密集していない地域に押し付けています。それは事故発生の際に被害を少なくするという、身勝手な都会中心主義ですが、都会中心主義は原発被害を避けるだけに止まりません。近代日本国家成立から今日まで、福島県は兵隊と食料と石炭、石炭鉱廃止以降は原発の受け入れ、工場への労働者供給をし続けてきています。全ての原発立地地域は多かれ少なかれ同じ役割を担ってきています。つまり、人、食料、エネルギーを大都市・大企業が富を独占していくために、ひたすら供給する「国内植民地」なのです。

原発受け入れにより、多額な金が原発地域に支払われ、雇用確保がなされていることも事実です。しかし、農林漁業を始め、もともとその地域にある資源・力を適切に発展させつつ、豊かな暮らしを作り出して行くという方向を切り捨て、国家・企業から与えられる金に依存させ、またその金をもらい続けるためにさらに原発設置を受け入れるという悪循環を引き起こしています。確かに経済的に豊かな生活をしたいので、危険承知で原発を受け入れてきた地域行政と住民の責任もあるでしょう。しかし第一の責任は、経済成長こそが最高善という拝金主義と、オール電化などの過度な贅沢な暮らしを当然と国民に思い込ませてきた国家・大企業にあります。同時にそれに便乗して、金と贅沢品の所有こそが「豊かな生活」と考え、飽くことなくそれを追い求め、生命を支える食料やそれを生産する農・漁民を見下し「植民地」化してきた私たち都市住民は、その地域の未来を破壊してきた責任を自覚しなくてはなりません。

また地域差別とは異なりますが、漏れた汚染水などを雑巾で拭くなど、原発内の最も危険な仕事をしている労働者は多量の被曝と、そして社会的差別にさらされています。いずれにしても、原発は社会的差別構造を作り出し、またそれによって維持されているのです。

韓国のソウル首都圏への人口集中は日本以上に高いと聞いていますが、韓国の原発が置かれている農漁村地域とソウルなど大都市との関係は、おそらく日本と同じだと思います。

 前回のソウル老会北支区宣教協議会のテーマ「現代社会のうめきに応える教会—ガリラヤのイエスを想いつつ…」の「ガリラヤ」は、エルサレムを中心にしたユダヤ世界の国内植民地でした。私たちは「ガリラヤのイエスを想う」とき、福島を始めとする「国内植民地」を重ね合わせて想い、考え、なすべきことをなさなくてはなりません。

 

5.「自然の災禍(わざわい)」と「原発災害」

3.11の地震・津波による被害は、確かに甚大なものです。家族、家、田畑、仕事が奪われ、どのようにして生活を再建していくかの見通しが立たない人々が沢山います。その人々の将来に向けての復興・再建計画への協力が、今後長期にわたって必要です。傷ついた人も自然も、時間はかかるでしょうが回復・復興していくでしょう。地震・津波による自然の「災禍(わざわい)」は、人類は何度も経験し、それを乗り越えて歩んできました。実際、今回被災した東北地方は千年以上前から何度も大地震・大津波に襲われながら、歴史の歩みを止めることはなかったのです。地震・津波は偉大なる自然にとっては特別のことではなく、時にはそのような振る舞いをすることが必然であるといえます。ただ、その自然がもたらす災禍に対しての防御が甘かったことで、今回の被災規模が大きなものになったことは確かです。

今回の震災は「未曾有(いまだかつておこったことがない)」の災害だといいますが、地震・津波は過去に既に起きていた規模であり、原発事故こそが「未曾有」の災害をもたらしたのです。なぜなら、それは人間が自ら生み出した最大の災害であり、しかも人類400万年の歴史からみれば、たった最後の100年にも満たない時間で生み出した「原子力」による「害毒」だからです。「原子力=核兵器・原発」へと辿りつく道は、最初に触れたように17世紀科学革命から始まりました。その基本にある考えは、神になりかわって自然を支配し操作し、さらには創造者にもなろうとしてきた歩みです。火力・水力・風力などの活用は、人類が自然との付き合いの中で経験してきたことを踏まえて獲得してきた技術ですが、原子力は純粋理論のみの技術で、それにより何が起きるかは予測不能であり、解決することが一切できないものです。しかも放射性物質による被曝は、人に限られたことではありません。放射線による細胞(DNA)破壊は全ての生物に及びます。「空の鳥、野の花」も小さな昆虫も、全ての被造物が被曝で破壊されるのです。

それに加え原発は「国内植民地」という差別構造を国策で作り出してきました。この国策としての国内植民地は、前回の宣教協議会でも話し合われた沖縄がまさにそうです。日米安保体制は沖縄に軍事基地を押し付け、沖縄本来の平和な社会や未来を破壊しています。原発推進の目的は核保有による安全保障にありますが、それは沖縄に対する日米政府の位置づけとまったく重なっています。従って、原発を廃絶することは環境問題としてだけではなく、戦争のために存在している原発を廃絶するということでもあります。

日本政府と原発企業は、福島原発事故が起きてもなお、国内原発維持・推進を目指すだけではなく、海外への原発輸出を推し進めようとしています。原発輸出に関しては日本と競合している韓国政府・企業は、日本が福島原発事故によって国際的信頼性が低下する中で、ビジネスチャンスにしようとしていると聞いています。アジアでは原発を持つ中国・ロシア以外にインド、パキスタンが核保有国になっており、また既に原発を有する日本、韓国、北朝鮮、台湾、ロシアを考えれば、原発輸出の危険性は「事故」に止まらないことは明らかです。

 

6.「3.11フクシマ」から「東アジアの平和」に向けて

ソウル老会と北支区は「東アジアの平和」のために宣教協力を進めていますが、原発はそれを真っ向から否定するものです。「3.11フクシマ」を経験した私たちが、「東アジアの平和」に向けて歩むための幾つかの課題について簡単に触れておきます。

 *1基だけであっても深刻な環境破壊と身体的破壊を生み出し、核兵器保有が可能になる原発を全て廃絶し、脱原発社会を実現すること。同時に原発輸出に反対すること。

 *経済成長こそが豊かな生活を生み出すという「成長神話」から脱し、環境や資源の制約を積極的に受け入れた「足るを知る」経済生活、競争や奪い合いから「分かち合う」経済生活を実現していくこと。

*都市と農漁村の共生を実現していくこと。特に安全で持続可能な方法で食料生産する人々を支え保護し、適切に消費する「地産地消」を実現していくこと。

*軍事力、核の傘による国家安全保障ではなく、国境を越えた民衆どうしが、弱い立場、社会の片隅に追いやられている人々との連帯を基盤にした相互信頼を構築し、人権・自治権の保障、非戦・非軍事化、環境保全、ジェンダー平等などを基軸とした民衆連帯、地域協力による「東アジアの平和」を実現していくこと。

 おそらくこれらの課題は、既に私たちはそれなりに自覚して来ていたものが大半であると思います。しかし、多くの人々はこの課題を認識していない、あるいは認識していても緊急で重要な課題であるという意識は薄かったと思います。しかし、3.11以後の世界に生きる私たちは、この課題をより広範な人々と共有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いえるでしょう。

そして教会は、「3.11フクシマ」によって示されたことを信仰の問題・課題として捉え、社会的立場の相違や神学的聖書的解釈の相違など、様ざまな困難もあるでしょうが、信仰告白としての行動へと結び付けていく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と思います。

私が属する信濃町教会では、被災者支援のための委員会を設置するとともに、あらためて原発問題についての学習講演会や映像学習会を行うとともに、礼拝説教で脱原発のために積極的に発言・行動していく責任があることが語られています。また、先日開催した教会修養会のテーマともしました。それらを積み重ね、教会として声明(信仰告白)を出せるように進めて行きたいと思っています。私個人は、原発事故被災地域の農民との連帯や子どもたちへの食料支援、脱原発・反原発輸出運動を他の市民団体と一緒に進めています。

 これらは小さな活動でしかありませんが、そのような活動が様ざまな教会、地域、領域でなされ連携していけば、大きな力になると思います。昨年は日韓強制併合から100年、今年は韓国における『民主救国宣言』から35年です。私たちは日本が韓国になしてきた侵略・抑圧の負の歴史を一層深く認識するとともに、1970年代半ば以降の韓国民主化運動において、キリスト者を始め韓日民衆が連帯・協力した事実を踏まえ、北支区ソウル老会交流開始10年のこの時、3.11以前とは異なる新しい時代・社会を作りだすために、両教会が新たに連帯・協働していければと思います。

 最後に、冒頭でご紹介した福島の女性の発言の最後の部分をご紹介して終わります。

 <私たちは、便利さや発展が差別と犠牲の上に成り立っている事に思いをは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人類は、地球に生きるただ一種類の生き物にすぎません。自らの種族の未来を奪う生き物がほかにいるでしょうか。私はこの地球という美しい星と調和した、まっとうな生き物として生きたいです。エネルギーを大事に使い、工夫に満ちた、豊かで創造的な暮らしを紡いでいきたいです。どうしたら原発と対極にある新しい世界を作っていけるのか。誰にも明確な答えはわかりませんが、誰かが決めた事に従うのではなく、ひとりひとりが本気で考え、確かに目を見開き、自分ができることを決断し行動することだと思うのです。私たちは誰でも変わる勇気を持っています。そして、原発をなお進めようとする力が、垂直にそびえる壁ならば、限りなく横にひろがり、つながり続けていくことが私たちの力です。私たちひとりひとりの背負っていかなくてはならない荷物が途方もなく重く、道のりがどんなに過酷であっても、目をそらさずに支えあい、軽やかにほがらかに生き延びていきましょう。>

 

(2011.9.30.)

본 발제문은 제6회 한일선교협의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일본기독교단 동경북지구)에서 다룬 것입니다.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한명기) - 1장

한명기-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내용 정리

1장.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서인계 인물들은 정묘호란의 책임을 ’강홍립의 복수전’으로 설정,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렸던 배경은 정묘호란 후 후금과 인조가 화약을 체결한 것에 의해 인조 반정 당시의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이 훼손되었던 것을 무마하기 위한 것.

 후금은 정묘호란을 일으킨 주요한 목표로 조선 정벌이 아닌 모문룡 제거였으며, 조선 역시 후금에 적대적이진 않았다. 왜냐면, 조선은 반정 이후 불안한 내정을 추스리기 위해 후금과 최소한 협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모문룡이 당시 둔거하던 가도의 동강진은 후금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었으므로 후금은 뒤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묘호란 이후 인조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광해군 대의 북인계 인물을 등용했다. 그러나 후금과의 화친은 인조반정을 지지한 신료들에게 반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과오로 인식될 소지가 컸기에 유생들의 비난이 컸다. 당시 지방의 유생들은 모문룡의 본질을 제대로 모르고 모문룡과 합세하자는 주장가지 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과 후금은 교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금으로선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물자, 예를 들어 직물류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으며, 조선은 중국과 일본 물자를 후금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후금과의 후추, 단목, 종이, 청포등의 물자를 제공하는 교역 후 얻은 은, 인삼을 가도로 가서 청포와 바꿔오는 방식의 무역구조가 성립되었고, 후추와 단목은 왜관을 통해 유입되는 물품이었다.

 정모효란 이후, 인조는 후금과의 강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며, 이귀, 최명길 등은 권도론, 기미책을 내세워 후금을 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으나, 삼사의 언관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아무튼 후금은 정묘호란을 통하여 조선 및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조선 원정에서 물자를 얻고 무역 약속을 얻어냄으로써, 명과의 전쟁에서 경제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엇다. 이는 후금이 몽골 등을 회유하고 명에 대해 포위망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활발하게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해온 서경식(도쿄경제대),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한홍구(성공회대) 교수가 15일 제주에서 ‘기억과 증언’을 주제로 ‘평화 좌담’을 연다. 제주4·3연구소와 제주민예총이 마련한 좌담회는 오후 7시30분 제주시 삼도2동 ‘북카페 각’에서 열린다. 세 교수는 지난해 11월부터 후쿠시마, 서울, 도쿄를 오가며 평화 좌담을 진행해왔다. 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이의 수용을 통해 평화이야기를 풀어가고, 제주 4·3사건과 사건의 해결과정 등에 대해서도 토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064)756-4325. 제주/허호준 기자

5월 2일부터 12일까지 베를린에서는 ‘한국 영화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에 대한 연속 상영이 있었다. 13일에는 한·독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판타지’ 공연이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충격적’ ‘환상적’이라는 말로 집약됐다.

‘한국 영화의 오늘’ 행사의 개막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이었고, 두 번째 작품은 김근태 고문사건을 다룬 ‘남영동 1985’였다. 국제적·국내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두 편 모두 역사성과 사회성이 짙은 영화로서 집단학살과 인권유린을 주제로 건국 전후와 전두환 독재 시기를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었다. 과거 같으면 해외 상영은 고사하고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주제들이었다.

개인이건 국가건 인간들은 누구나 자기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나,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 만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즉 우리가 과거 아픔을 성찰한 문화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미래 발전과 희망의 징표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과거 직시와 자기성찰의 크기는 곧 희망과 가능성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환부를 치료하지 않는다면 전체 몸은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우리가 ‘밖으로’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는 정도는, 스스로 ‘안에서’ 드러내고 극복한 건강성만큼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오늘날 동아시아의 과거사·교과서·영토·성노예·침략 문제를 둘러싼 진실과 화해가 근저부터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자기 치부를 직시한다는 것은 동아시아(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의미를 함께 갖는다. 아직 크게 부족하지만 동아시아에서 한국만큼 민간학살과 독재와 인권유린을 포함한 자기 역사를 반성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일본·중국·북한·대만을 포함해 세계를 향해 우리가 더 큰 시야에서 이 길을 멈춤 없이 앞서 나가야 하는 세계적 동아시아적 이유인 것이다.

태평무·강강술래·학춤·부채춤·봉산탈춤·삼고무·오고무 등을 공연한 ‘코리아 판타지’를 보며 옆의 관객들은 ‘환상적’ ‘절대적’이라는 말을 연방 반복했다. 이 공연은, 모든 예술은 토착적일수록 보편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인간의 마음을 깊이 움직일 수 있다면 언어와 장소는 문제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절대감동은 모두를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다.

토착(성)은 곧 나날의 일상 삶을 말한다. 보편적 예술은 그로부터 나온다. 이 공연은 춤이 곧 삶이고 노래가 곧 삶이었던, 사시사철 어디서나 함께 흥얼거리고 덩실거리며 살았던, 그리하여 삶과 예술, 놀이와 일, 나와 남, 자연과 인간이 일치되었던 한국적 삶의 방식과 예술 양식의 아름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즉 한국 문화의 정수였던 일로서의 놀이와 놀이로서의 일, 삶으로서의 예술과 예술로서의 삶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우린 그것을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코리아 판타지’는 오늘날 황폐화되고 고통스러운 한국적 삶이, 일과 놀이, 삶과 예술의 분리로부터 왔다는 점을 무겁게 깨닫게 하고 있었다.

다케우치 요시미 이전의 일본 아시아주의의 정황

동아시아 봉건국가들의 헤게모니 중심축이었던 중국은 17세기 초반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화질서가 청나라로 교체대면서 그동안에 유지되던 질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문명국가인 명나라가 야만국가인 청나라에 의해서 붕괴되었다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의 중화질서에 새로운 변화가 도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중화를 예로삼고 주변을 덕으로 돌본다’는 중화질서와 그 주변국가의 대 중국 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고 있었다.

이러한 동아시아 질서의 전면적적인 재편의 틈새에서 서구의 제국주의는 먼저 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의 위계를 약화시키거나 파괴를 시도하였고 중국의 다른 한 중심축을 이루며 일본은 제국주적으로 자신을 변신하고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예로 규율되던 조공-책봉제도로 상징되었던 전통적 중화질서를 붕괴시키고 국민국가 중심의 공법 질서로 연합된 동아시아의 국가들의 연맹체를 구축하기를 원했다. 서양과 일본은 서로를 이용하거나 연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질서를 구성해가고 있었다. 특히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번의 전쟁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중화의 종속국에서 중화 질서를 동아문명으로 대체 할 아시아 패권국으로 공고히 하고 있었다. 청일전쟁이 동아시아의 내부 모순과 세계관의 충돌에서 이루어진 전쟁이라고 한다면 러일전쟁은 인종전쟁에 가까운 것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서구와의 대결에서 황색인종의 대표적인 투사라는 이미지와 서구의 문명을 성공적으로 전승한 문명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두 번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일본에게 제국주의로서의 아시아적 대표성을 부여하도록 하였다.

사실상 일본의 탈중화는 이미 도쿠가와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진행되어온 긴 진화 과정의 귀결이다. 명청 교체기인 17세기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이 되면 일본은 점차 문화적 중화주의에서 신속하게 일본 중화주의로 변신해간다. 국체론자 다니 신잔(1663-1718)은 “일본이 중화이며 그런 일본의 다스림과 교화가 미치지 않는 나라가 오랑케”라고 말 하였고, 국학의 집대성자인 모토오리 노니나가는 “오직 황국 일본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고전설이 전해진 뛰어난 나라이며, 황조신 아마테라스가 태어난 본원적 종주국”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토쿠카와 시대의 일본사상가들은 탈중화적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에서의 중심적 지위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명청 교체기의 중국 격변기에 일본의 대 중국관이 반영되어 일본을 중화와 대등한 위치에 두기까지의 배경에는 일본형 화이사상가인 야마가 소코(1622-1685)와 아사미 게이사이(1652-1711) 그리고 구마자와 반잔(1619-1691)이 있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 소코는 일본의 중국에 대한 문화적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에는 인물예용이 성인의 도에 합치하며 중국의 경서가 이미 오래 전에 전해졌고, 풍속과 문화가 지극히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중국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안사이학파의 게이사이는 “그 나라에 태어난 자는 그 나라를 주인으로 하고 다른 나라를 손님으로 보게 되는 법, 일본에 태어났으니 일본 전토가 모두 천자의 나라”라고 일본의 중국과의 동등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구마자와 반자도 명 중화주의로부터의 탈주 의지를 보이면서 중국보다 일본의 우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여전히 중화를 기축으로 하는 문화적 중화주의에 기반을 두고 일본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노리나가의 스승인 가모노 마부치(1697-1769)를 주의하여 볼 필요가 있는데 마무치는 인간의 문화적 노력을 부정하는 반문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화부정이 중화주의를 해체한 시원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마부치 이전에는 화이의식을 기반으로 한 문화우열을 가리는 극단적인 일본 찬미론 담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부치는 문화자체를 거부하는 ‘저절로’라는 신도적 자연주의와 ‘천지의 마음 그대로 다스려온 일본‘이라는 주정적 일본주의를 정립함으로서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주자학적 자연주의 또는 문화적 중화주의 자연관을 근본으로부터 변혁시켰다. 이와 같은 주정적 일본주의는 후기 미토학과 국학을 거치면서 근대 일본의 탈아론과 아시아주의로 진화해간다. 즉 그동안 아시아에서의 패권의 주도권이 중국에 있었다면 이제 서양이 중국을 대체하게 되어 서양이 화이사상의 기준이 됨으로, 중국 대 일본의 구도가 동양 대 서양 또는 문명과 야만의 구도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근대일본의 후쿠자와 유기치로 대표되는 ’탈아론‘이 전자의 인식틀로 전개되었다면, 다루이 도키치의 ’대동합방론‘, 오카쿠라텐신의 ’범아시아 동맹론‘, 미야자키 도텐의 ’중국혁명론‘, 이시하라 간지의 ’동아연맹론‘, 미키 기요시의 ’동아협동체론‘, 니시다 기타로·스즈키 시게타카·고야마 이와오·고사카 마사아키·니시타니 게이지 등의 ’근대의 초극론‘을 포함하는 다양한 아시아주의론은 후자의 인식틀로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의 ’탈아론‘과 여러 ’아시아주의‘ 담론은 형태를 바꾼 탈중화의 연장선상에 뿌리를 두고 전개된 사상이라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국제관계론

일본의 근현대사를 시작으로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공부하려한다.

아울러, 국제관계론도 공부하려 한다.

우선 강의와 책을 병행하며 정리하고자 한다.

현재 방송통신대의 일본의 근세근현대사와 일본근현대 정치사 강의를 듣고 있으며,

울산대 공개강의 중 김주홍 교수의 국제관계학 개론을 듣고 있다.

관련 서적으로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세계정치론이다.

동아시아 근현대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145617

세계정치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1908

(내가 가진 책은 4판인데, 벌써 절판되었고 5판이 나왔다. )

한국전쟁 관련책을 읽으면서 시작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와 국제정치.

꼼꼼하게 읽어보자, 한국 전쟁은 내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외부의 문제에서도 기인했음을 기억하자.

Youngsik Kim‎"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아사히 신문 저, 창비, 2007)“ 이라는 책이 있다.
한중일 동아시아의 역사를 각각 독립적 대립적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교류와 연관의 관점으로 보자는 취지로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연재했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동아시아의 "공생공존"이라는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공통된 역사인식을 주장하는 이 책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일본의 제국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역사반성과 화해없이, 동아시아의 공통된 역사인식을 일본이 주장해서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야스쿠니 신사참배,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평화헌법 수정, 태평양 전쟁 피해자 등). 특히 동아시아 역사에서 북한이 배제된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열가지 사건들은 자문위원 20인의 선택이라고 하는데 일본인10명, 중국 4명, 대만1명, 한국 3명, 영국 1명, 미국1명이다. 특히 한국 3명 중에는 전 동아일보 사장도 있다.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토대가 되는 자국의 역사관점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아래 링크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한국 전쟁을 동아시아 30년 전쟁(1945-1975)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도올의 강의다.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중국과 한국의 독립 무장 투쟁과 국공내전의 연장선 속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관점이다. 시간을 내보시길 강추!

도올 김용옥 - 동아시아 30년 전쟁 (50분강의) - 꼭 보시길!!www.youtube.com한국 현대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내용임. 강추!! 좋아요 ·  · 공유하기 · 10월 28일 오후 1:17 · 

  •  
  • 방준범님이 좋아합니다.
  • 공유 1건
    • Youngsik Kim ‎Syng Jang Rhee Dong-hyun Yang 박현철 Soa Huh10월 28일 오후 1:38 · 좋아요
    • 박현철 동영상은 이따가 보겠습니다. 근데 목사님은 역사공부, 특히 동아시아 공부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10월 28일 오후 4:33 · 좋아요 · 

       1
    • Youngsik Kim 현철 전도사님이 궁금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을 볼 때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가 너무 굴절되어 있고 역사 모순들이 채 해결되지 않은채 현재의 갈등과 모순을 더 중첩시키며 불투명한 미래를 보이기 때문이죠. 

      역사공부의 목적은 역사를 오늘과 내일에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현재의 우리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역사 살아내기이죠. 

      특별히 동북아시아, 넓게는 동아시아가 하나의 지역 공동체(평화, 경제,번영)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기초가 동아시아 공부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구 유럽 중심의 역사관, 제국주의적 역사관, 중화 역사관, 과도한 민족주의 역사관을 배격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겠죠…….지금 교회 가봐야 해서, 나중에 더 심화시킵시다 ^^10월 28일 오후 7:59 · 좋아요
    • 박현철 목사님께서 제가 궁금해하는게 뭔지 아시겠다는 것처럼, 저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압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정말 궁금한건, 미래를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화해하며,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가야 할까요? 동아시아 공동체에는 큰 기대도 희망도 없습니다. 어려울 뿐 아니라 왜 그런걸 해야 하는지 당위도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화해와 평화는 꼭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10월 29일 오후 1:51 · 좋아요 · 

       1
    • Youngsik Kim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야지요. 특별히 하나님의 화해(God’s Reconciliation)를 입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화해와 평화는 더없이 중요한 신앙과 인격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집단, 특히 국가간의 화해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수반합니다. 소박하게 서로의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고 표현했는데, 사실상 집단간 화해의 과정속에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표현하는 것은 화해와 평화의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프랑스-독일 간의 언어교환이 화해의 마지막 단계에 이루어졌습니다. 

      개인간의 화해와는 별도로 사회적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는 4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1.Truth(화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고 필수적인 첫 단계), 이 때 누가 truth를 말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화해의 단계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야 하는데, 이 때 가해자가 truth를 말해서는 안됩니다.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하지만 더 정확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대화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truth를 의미합니다.10월 30일 오후 11:36 · 좋아요
    • Youngsik Kim ‎2. Justice, 진실 규명단계를 거친 후에 이에 합당한 조치들이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백한 구분(이것이 어려울 때는 양자가 공히 인정할만한 중재인을 내세움), 처벌 혹은 배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3. Apology, 가해자의 사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regret 유감이라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그 차이는 responsibility 책임성 유무입니다. 

      4. Forgiveness,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이 사회적 용서의 단계를 거쳐야만 그 후에 새로운 관계변화(rebuilding relationship, reframing relationship)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 공동 제작, 언어 교환 등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의 단계를 이루는 것은 이 마지막 단계를 거쳐 새로운 관계 형성을 이룰 때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어느 사회적 집단 혹은 국가가 이러한 화해의 단계를 거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은 일본에 대한 내상(trauma)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과를 하다고 하지만 이는 책임성이 부재되어 있는 유감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단계에서는 섣불리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것은 순진하든가 아니면 가해자의 입장, 일본의 진실을 추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집단간 화해의 단계는 이미 이론적, 임상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해체된 이후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아래의 책들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Reconciliation; Restoring Justice(Gruchy, 2002), The Social Psychology of Intergroup Reconciliation (Oxford Univ. Press, 2008), Exploring Forgiveness(Enright & North Ed. 1998) 한국말 책들은 제가 아직 잘 몰라서…ㅠㅠ 

      금토 수련회 갔다가 주일 예배 끝나고 지금에야 봐서 늦게 댓글을 달아 미안합니다. ^^10월 30일 오후 11:53 · 좋아요
    • 박현철 그루시가 이 주제에 대한 책을 썼군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역시 목사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왜곡된 역사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세가지 더 여쭙고 싶습니다.

      1. 목사님은 저 네가지 과정이 꼭 순서적,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혹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가요? 아니면 동시에 병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시나요? 더불어 위의 네가지 단계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화해의 정신이 구현되어야 할 단계는 어디입니까? 

      2. 1단계의 진실 추구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대화"하며 도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마지막에서는 "역사교과서 공동제작, 언어교환 등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의 단계를 이루는"것은 네 단계를 모두 거쳐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 "대화"의 차이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궁금합니다. 

      3. "개인의 화해"와 별도로 "사회적 집단"간의 화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연결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쉽게 말해서 사회적 집단의 화해를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으로,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동아시아대회가 사회적 집단간의 화해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10월 31일 오후 3:42 · 좋아요
    • Youngsik Kim ㅎㅎㅎㅎㅎ 질문들이 뭐 거의 논문 수준이구만요. ^^ 제가 아는 한에 있어서 답을 생각해본다면, 

      1. 꼭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교조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단계들이 깨어진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경우, 순서 또한 무시할수는 없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화해 정신이 구현되어야 할 단계라…일반적인 기독교 화해(Christian Reconciliation) 신학의 다섯 가지 특징을 참고하셔서 생각해봅시다. 1)화해의 주체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 활동에 참여하는 것 2)화해에 있어서, 하나님은 피해자(victim)들과 시작하신다 3)화해에 있어서, 하나님은 피해자들(victim)과 가해자(wrongdoer)들을 "하나의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고후5:17) 4)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 이야기 속에 둔다(빌3:10-11) 5)화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기까지는 완성되지 않는다(고전15:28) / 종말론적 관점 유지

      2. 두 대화의 차이는 신뢰 관계 구축의 여부입니다.

      3. 많은 부분들에서 연결점이 찾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 작업이 현 단계에서는 기여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간의 화해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치료와 더불어 가해자의 치료도 중요한 시작 과정에 들어갑니다. 때로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가 지금 자신들은 가해자이기전에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대회에서 한중일 청년 개인들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 그리고 솔직한 고백과 상처 나눔, 용서와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11월 1일 오전 10:09 · 좋아요
    • Youngsik Kim 참, 중국기독교사 책 구했나요? 조훈교수(총신대 역사교육)의 책이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던데…아직 결정하지 않았음 이번에 이걸로 하면 어떨까요? 북경대에서 박사학위마친 동기 목사가 추천해준 책입니다.11월 1일 오전 10:37 · 좋아요
    • 박현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는 여전히 궁금하고 찜찜한 것이 있지만 더 공부할거리들이 생긴듯하네요. ㅎㅎ11월 1일 오전 11:55 · 좋아요
    • 박현철 중국기독교사책은 참고할게요. 저도 추천받은게 있어서 직접 보고 고르려는데, 서점에 잘들 없어서…-_-;11월 1일 오전 11:56 · 좋아요
    • Youngsik Kim 중국 기독교사 한글 버전의 책이 두 명, 이관숙(?) 조훈, 정도라고 하는데, 이관숙 버전은 너무 오래되었다고 하네요. 그나마 조훈이 낫다고 하고. 그리고 지난 여름에 목원대에 아시아 기독교사 학회가 창설되었다고 하니 그 쪽으로도 접촉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요? ^^11월 1일 오후 12:25 · 좋아요
자신감 자존감

근대화한지 몇백년씩 된 유럽의 몇몇 나라

표면적으로나마 저런 시늉을 안하는 척이라도

동아시아- 체면문화

-선진국이라해도, 후발주자들한테 따라잡히거나 별로 특출나지 않은 문화도 있는 것.

@ 남자든 여자든 

- 자신감과 자존감만 있으면 외모에 별로 상관없이 이성은 붙는다.
- 그들은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에 

@ 외모가 출중한 인간보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인간이 훨씬 더 잘 사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