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만!

인간관계, 내 마음 같지 않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주변에 친구 없는 중년들을 가만히 보고있자면 그들이 보내고있는 시간들이 쓸쓸하고 심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분명히 그들도 나와 같은 찬란한 20대를 보냈을테고 그 때의 말도많고 탈도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냐는말이다 요근래에 일을 그만 둔 나는 인간관계라는 주제로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기별이 없었던 옛날 친구와의 재회가 있었는가하면 어떤 친구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기뻐하기도했다 이런 좋은 일들만 터지면 좋으련만 항상 그에 반하는 일도 함께 생기곤한다 별로 좋지 않은 일이라 내용을 기억하고싶지 않지만 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염증이나도록 느끼는 상황인것이다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에있어서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때, 그리고 그 상대방이 손뼉이라도 맞추듯 멈추지않고 함께 흘러가버릴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공을 들인 시간과 감정적인 소통이 단절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괴감에 빠진다 내가 상대방에게 있어서 이 정도밖에 아닌 걸까 그럼 그만두자라고 하는 생각과 나는 아직도 이 사람과의 관계성에 대해 미련이 남은 것 같은데 연락을 해볼까하는 마음이 상충한다> 문득 어른들은 이런 인간관계에 얼마나 상처를 받고 얼마나 치인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모든 관계에 교류를 끊어내고 혼자가되는 것 만을 선택한 것은 상처를 덜 받기위한 어른들만의 방어기제일까 어쩌면 가까운 훗날에 나 역시 그런 쓸쓸한 인간이 되어있지는 않을까하고 조금 두려워지는 새벽이다

신해철에 관하여

한겨레 허지웅의 설거지) 보고 싶다, 형


안녕하세요, 신해철입니다.

뭔소리야. 나는 생각했다. 누구라고요? 신해철이라고요. 그러고보니 목소리가 닮은 것 같다. 그런데요? 만나서 해야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래서 우리는 만났다. 추운 날이었다. 식당에서 만났다. 그를 태운 검정색 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좀 쑥스러웠던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마셔댔다. 둘 사이의 빈공간을 술로 메우려는 것 같았다. 정작 해야할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는 먼저 취해버렸다. 몸이 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를 태운 검정색 차가 떠났다. 뒤늦게 취기가 올라온 나는 그러니까 오늘 뭐 때문에 만난 것이었더라, 생각하면서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야 난데, 그러니까 우리가 만나서 해야할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까지 하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둘 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주소를 받아들고 그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을 향했다. 오래된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그의 어둡고 음험한 사무실에서, 우리는 하루만에 다시 만났다. 이후 저 어둡고 음험한 사무실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농을 하고 울고 화를 내고 대개는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로 밤을 꼬박 세웠다. 이상한 인연이다.

요는 같이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맥심>이라는 잡지가 라이센스 문제로 재창간을 하면서 자신이 편집장을 맡게 되었는데 나보고 수석 에디터를 하면서 부 편집장 노릇을 해달라고 했다. 경력관리 측면에서 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였지만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빨리, 너무 깊게 친해져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새벽 두시에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편집권이 있는 편집장인 줄 알고 애초 승낙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일종의 항명이 있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다가 뒤늦게 얼굴마담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곧 잡지를 그만두었다. 이 사건의 좀 더 정확한 경위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내막이 어찌되었든 그가 그만두었으니 나로서도 더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그만두었다.

한동안 소송을 하겠다고 분개하던 그는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내 결혼식에 와서 그는 ‘일상으로의 초대’를 불렀다. 노래 중간에 음이탈을 했다. 가뜩이나 성당이라 엄중한 분위기인데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고 두고 그걸 놀려먹었다. 내가 신혼여행 내내 저 목소리의 질감을 떠올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건 미처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노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그가 칩거에 들어간 십수개월 동안 나는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자주 그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늦은 저녁이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너 이혼했다며, 이 거지같은 새끼야. 타박을 해야할 건 이쪽인데 뜻밖의 공격을 받고 나는 그만 더듬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나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십수개월의 시간차가 사라지고 이음새없이 맞춰졌다.

우리는 동네의 양꼬치집에서 재회했다. 그는 굉장히 건강해보였다. 새 앨범이 나올 것이라며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다. 실험적인데 대중적이다, 라고 나는 말했다. 실험적인데, 대중적이다. 그가 따라 말했다. 그리고 크게 기뻐하며 덧붙였다. 그게 내가 잘하는거지.

며칠 후 늦은 밤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굉장히 즐거웠다. 그는 늘 차를 타고 우리 집 앞에 와서 나를 싣고 어디론가 떠나고는 했다. 우리는 분당의 그의 집으로 갔다. 형수님과 아이들이 집을 비운 터라 우리는 밤새 술을 마셨다. 그가 칩거하는 동안 했던 개인적인 고민들,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그의 아이들, 내 이혼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풍경, 사후세계와 외계인 식민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들은 그의 친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겉 다르고 속 달라 싫어한다는 아무개, 우리가 오해 받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것들, 야 너는 내가 젊었을 때랑 굉장히 닮았다,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어 내가 훨씬 더 잘 생겼어, 그런 도무지 초점없는 대화들을 하다가 다음 날 오후 한시가 되어서야 기절해버렸다.

겨우 술을 깨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한동안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서 당황했다. 뛰어내리듯이 침대를 벗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형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거기 기둥에 붙어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의식이 있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속사정쌀롱> 촬영장이었다. 같이 촬영을 마치고 나가면서 그는 나흘 뒤에 양꼬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음 날 그는 쓰러졌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술약속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나는 별일이 아닐 거라 낙관했다.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의식이 없었다. 매니저의 말로는 중간에 잠깐 의식이 있었고, 나를 찾았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약속을 떠올렸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귀에 대고 몇번이고 속삭였다. 나 찾았다며, 나 왔어. 나 왔다고. 그러나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부고를 듣고 썼던 짧은 글 이후 나는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느닷없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옳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건 내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자리를 피하거나 억지로 다른 생각을 했다. 때마침 다른 일들이 맞물리면서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가려고 작정한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며칠 전 2주기를 맞아 혼자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의 트위터 계정을 들어가보았다. 그의 말투가 묻어나는 짧은 글들이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 마지막 몇개월 동안 계속해서 언급되는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마음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 그 말들과 대화를 했다.

나는 이제 괜찮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투사였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광장의 음악이었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젊은 시절의 섬광이었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논객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늦은 밤 이어폰을 통해 울려퍼지던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신해철은 어쩌면 그 모든 것과 무관한 무엇이었다. 그는 그저 마음 약하고 대책없이 따뜻하며 아이들을 거짓말처럼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내게 그는 좋은 친구였다. 나도 그에게 좋은 친구였기를 바란다. 형이 보고 싶다. 우리형이 너무 보고 싶다. 


허지웅

열세살

나는 줄의 끄트머리에 섰다. 아저씨 하나가 나를 밀치고 내 앞으로 들어섰다. 내가 먼저 왔어요.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어긴 지 오래였다. 아저씨는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 어깨에 휘감겨 있는 담요를 잡아당기며 일부러 또박또박 발음했다. 내가 먼저 왔다고요. 아저씨가 뒤로 물러서면서 내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씨발, 아침부터!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외쳤다.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콩나물국에 김치, 무말랭이. 식판을 들고 어디에 앉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담요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리고 아저씨 옆에 앉았다.

“어른한테 욕 하면 안 된다.”

“욕먹을 짓을 했잖아요. 새치기나 하지 말던지.”

아저씨는 국물을 마시면서 나를 흘깃댔다. 후루룩, 나는 아저씨를 따라 소리 내서 국물을 마셨다. 아저씨한테 찌든 술 냄새가 났다. 여기 사람들에게 익숙한 냄새였다. 사람들은 벤치나 분수 턱, 맨바닥에 앉아 똑같이 생긴 식판에 담긴 똑같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도로는 막혀 있고,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반납한 식판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녹색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나에게만 흰 우유를 쥐어 주고 갈 것이다. 멀리 예수천국 아줌마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는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내 머리를 감겨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누가 무엇을 물어봐도, 절대 말해서는 안 돼. 아무 소리도 내면 안 된다.

엄마가 나를 시계탑 앞에 세웠다.

“여기서 기다려.12시가 되면 엄마는 돌아올 거야.”

나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다. 알겠지? 내 입을 엄마 손으로 막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매일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 나는 늘 처음 듣는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끄덕였다. 엄마가 내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모서리를 찢어 숨겨 놓았던 담요를 꺼내들자 광고판이 펄럭거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이 부시도록 환한 불빛 앞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혹시 신발을 잃어버리면 왕자가 나타날까? 나는 담요를 힘껏 쥐었다.

온종일 무수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개찰구는 텅 비어 있었다. 막차가 가고 나면 쇠창살이 내려졌다. 창살이 내려온 기둥 옆으로 현금지급기가 있고, 그 뒤가 바로 우리의 자리였다. 여기 사람들은 함부로 우리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먼저 누워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엄마는 발길질을 했다. 자리 때문에 실랑이는 종종 벌어졌지만 언제든지 엄마가 이겼다. 몸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웃통을 훌렁 벗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 때마다 큰 가슴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겁을 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건 검고 단단한 젖꼭지 때문이었다. 험한 욕설이나, 독을 뿜어내는 엄마의 눈빛보다 검은 젖꼭지가 더욱 위압적이었다. 나는 엄마가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덜렁거리는 가슴을 보여 구경거리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싸운 날은 엄마가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술 마신 다음 날은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웅크린 엄마 옆에서 나도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엄마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고 내가 싫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새벽이 되면 엄마는 사라졌다. 내 주머니에는 늘 천 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점심 값이었다. 아침은 녹색 앞치마들의 배식으로, 점심은 역 앞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먹었고, 저녁은 엄마가 들고 오는 걸 먹었다. 그러나 돈은 늘 부족했다. 과자나 음료수를 먹어야 했고, 머리끈이나 스타킹도 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그런 것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새벽마다 어디에 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우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절대 잠들지 않을 거야. 엄마가 내 손을 놓고 사라지는 걸 반드시 보겠어. 그리고 같이 가겠다고 말해야지. 하지만 눈을 뜨면 나 혼자였다. 엄마는 정확히 12시에 시계탑 아래에 서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역 주변의 백화점과 붉은 조명의 언니네 동네를 배회하거나 누더기를 걸친 삼촌들과 시시덕거렸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시계탑으로 갔다. 언제나 얼굴과 손, 머릿속마저 더께가 더덕더덕 내려앉아 있었고, 발바닥은 아렸다. 엄마는 화장실로 데려가 나를 씻기고서야 저녁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나의 하루는 매일매일 똑같았다.

엄마를 속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침묵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한 약속을 그날 이후로 지키지 않았다. 엄마만 사라지면 나는 제멋대로 떠들었고, 노래도 부르고, 욕도 했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작은 소리로 말을 했으며, 엄마가 이모들과 어울려 있을 때면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입을 앙다물었다. 착한 벙어리 소녀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약속을 먼저 어긴 건 엄마였다. 그날 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시계탑 앞에 서 있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1시,2시,3시가 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치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문이나 담요, 옷가지를 둘둘 말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저기 대합실로 들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부숭부숭한 터럭을 다 드러낸 여자였다. 불이 켜지면 어둔 구석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바퀴벌레처럼 여자 주위로 삼촌들이 달려들었다. 엄마는 아니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메슥거렸다.

쓰러지는 나를 안은 건 흰얼굴이었다. 시계탑 가까이에 있던 이모 두엇이 내게 다가오다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나는 그만 흰얼굴의 가슴팍에 토해 버렸다. 비죽 눈물이 솟았다. 흰얼굴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작은 새처럼 흰얼굴의 품에 안겼다. 흰얼굴은 나를 안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흰얼굴이 얼굴과 손을 씻겨 주었다. 입가심을 하도록 손에 물을 받쳐 주었고, 가방에서 꺼낸 깨끗한 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흰얼굴이 가만히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나는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괜찮니?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 수 있겠니? 나는 또 끄덕였다. 흰얼굴이 슬며시 웃었다. 소문처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흰얼굴은 역에서 자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늘상 역에서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누구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이모나 삼촌들은 흰얼굴을 슬금슬금 피했다. 인신매매범이라고도 했고, 여기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파렴치한이라고도 했다. 누구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기자라는 말도 있었다. 흰얼굴이 들고 다니는 사각의 검은 가방에 대한 이야기도 무수했다. 칼과 도끼가 있다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돈뭉치가 있다고도 했으며, 누군가는 사진기가 들어 있었다고 우기기도 했지만, 정확한 건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야기든 흰얼굴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 사람들과 구별되는 하얀 얼굴 때문이었다.

흰얼굴이 젖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손가락이 닿은 볼이 계속 간지러웠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시계탑 아래로 다시 가보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우리 자리엔 이미 다른 삼촌들이 자고 있었다. 흰얼굴이 물었다. 잘 데가 없니? 끄덕. 가자. 나는 흰얼굴을 따라 나섰다. 그 시간에 역 밖을 걷는 건 처음이었다. 거리는 술에 취한 사람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거나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 아무 데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통 고약한 냄새마저도 대합실의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마치 소풍을 나선 것 같았다. 토했다는 사실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가끔 흰얼굴의 팔을 끌며 들어오라고 행패를 부리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아줌마를 노려보면서 흰얼굴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그때마다 흰얼굴은 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어쩐지 우리는 한편이 된 것 같았다. 흰얼굴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점점 더 신이 났다.

휘황찬란한 간판 빛이 사그라지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줄어들었다. 어느새 좁고 어둔 골목을 걷고 있었다. 멀리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흰얼굴이 작은 문 앞에 섰다. 나는 주춤했다. 흰얼굴이 몸을 접듯이 허리를 구부리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에게 손짓했다. 들어와.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골목보다 더 좁고 더 어둔 복도가 길게 드러났다. 하나, 둘, 셋, 넷- 열세 번째 방문 앞에서 흰얼굴은 멈춰 섰다. 나는 흰얼굴이 열어준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좁은 방이었다. 흰얼굴이 불을 껐다. 나는 가만히 누워 다리를 뻗었다. 발끝이 벽에 닿았다. 세상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흰얼굴이 나를 안았다.

숨쉬기가 곤란했다. 손을 내밀어, 흰얼굴을 밀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뱉으며 내 위로 쓰러진 흰얼굴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내 몸은 너무 작았다. 먼저 약속을 어긴 건 엄마였으므로, 나도 어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워요.”

말을 하고 나니 어쩐지 엄마와 공평해진 것 같았다. 흰얼굴이 놀라며 내 몸에서 내려왔다.

“말할 줄 아니?”

“네.”

흰얼굴이 불을 켰다.

“다시 한번 말해 볼래?”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 냈다.

“말, 할, 줄, 알, 아, 요.”

흰얼굴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푸른 형광빛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둑했던 사물들이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없는 방에는 이불과 옷가지, 간단한 식기들이 있었다.

나도 이런 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빠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엄마는 자던 나를 깨워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나는 엄마의 걸음을 따라가지 못해 자꾸 넘어졌고 엄마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숨어 들어간 방도 푸르무레했다. 엄마는 그때도 나를 혼자 두고 아침마다 사라졌다. 나는 방문을 잠근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 옆방에 사는 언니, 오빠, 아줌마, 아저씨들은 항상 시끄러웠다. 그들은 자지 않으면 싸웠고, 깨어 있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무언가 먹을 때였다. 그들의 소리는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고스란히 들렸으므로 나는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리 내지 않으며 밥을 먹고, 소리 없이 요강에 오줌과 똥을 누는 법을 익혔다.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흰얼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여기서 살아요?”

흰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것이 많았다. 하지만 흰얼굴은 몸을 돌려 누웠다. 나는 바지를 올려 입고 천장을 보며 바로 누웠다. 내일은 엄마가 올까. 아침이 되면 흰얼굴에게 엄마 대신 이천 원을 달라고 해야 할까. 발끝에 닿는 차갑고 딱딱한 벽이 안락하게 느껴졌다. 나는 달고 깊은 잠을 잤다.

그 뒤로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 번 깨진 약속은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흰얼굴은 오천 원을 주었고, 엄마는 12시에 시계탑 아래에 서 있었다.

나는 대합실 천장에 걸려 있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대형 텔레비전이었다. 미끈하게 생긴 기차가 논밭을 지나고, 산과 바다를 지나는 사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차례로 변했다. 나도 기차를 타 본 적이 있다. 아주 어릴 적, 아빠가 죽기 전,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꾸 쳐다보지 말라니까.”

아줌마가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 애의 고개를 손으로 돌렸다. 나는 그 여자 애와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란 여자 애가 아줌마 품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슬금슬금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또 마주쳤다.

씨발, 뭘 봐.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여자 애가 울먹이며 아줌마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줌마는 여자 애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여자 애가 주춤거리며 일어서고, 아줌마가 내 옆에 앉으면서 나를 힐끔 쳐다봤다. 씹팔! 나는 소리 쳤다. 뭐? 벌떡 일어난 아줌마가 팔을 치켜들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후려칠 기세였다. 코끝을 찌르는 습한 누린내가 났다. 그 냄새는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지독했다. 그래서 나는 이죽대며 말했다.

“때려.”

아줌마 뒤로 삼촌들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흩어지고 있었다. 여자 애가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고, 벌겋게 달아오른 아줌마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여자 애에게 했던 말 그대로,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씨발, 뭘 봐. 꺼지라니까.

삼촌들 사이에 있던 흰얼굴이 아줌마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아줌마는 기겁을 하며 여자 애를 끌고 도망쳤다. 삼촌 두엇이 아줌마를 계속 따라가며 욕을 했고, 담요 아저씨가 아줌마의 소매를 잡으며 구걸을 했다. 뒤뚱거리며 도망치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여자 애는 아줌마 손을 잡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아이의 스타킹은 구멍이 나거나, 검은 얼룩이 묻었을 것이다. 삼촌들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을 세워 앉아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얼굴이 내 옆에 앉았다.

“왜 그랬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을 속으로 기차가 날아가듯이 미끄러지고 있다. 곧 이어 흰 눈이 쌓인 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여자 애가 반짝이 스타킹만 신지 않았어도 나는 욕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니까 나는 스타킹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화가 났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치마를 입히지 않았다. 나는 치마보다도 다리에 쫙 달라붙는 스타킹이 신고 싶었다. 보슬보슬한 천으로 된 스타킹도 좋고, 아가씨들이 신는 살이 비치는 얇은 스타킹도 좋다. 그래도 나는 무늬가 있거나 반짝이가 박힌 스타킹이 제일 좋았다. 나는 스타킹을 가지고 싶었다.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엉덩이에 바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치마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치마를 입지 못하는 건 내가 생리를 하는 여자 애였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역에서 살기 시작한 첫 해 겨울이었다. 팬티와 바지, 심지어 내가 앉은 대합실 의자마다 온통 검붉은 얼룩을 묻히고 다녔다는 것을 엄마에게 말해 준 것은 청소아줌마였다. 엄마는 청소아줌마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열 번도 더 했다. 청소아줌마가 간 후, 엄마는 대걸레가 꽂혀 있던 양동이에 물을 받아 아랫도리를 씻겨주면서 말했다. 이제 치마를 입어서는 안 돼. 엄마의 얼굴은 내가 만든 얼룩보다 더 검게 그늘져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피가 난다는 사실보다 아랫도리에 얼음처럼 찬 물이 닿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엄마는 팬티와 바지를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제 넌 어린애가 아니니까, 엄마 말을 더 잘 들어야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버려진 팬티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이미 꾸덕꾸덕 굳은 얼룩이 꿈틀거리면서 커지는 것 같았다. 마치 꽃잎을 활짝 펼치는 순간처럼, 그렇게 펄럭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두 눈을 꾹 감아 버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무릎이 튀어나온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원래 색깔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색이 바래 흰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제일 깨끗했다. 나와 엄마는 갈아입을 옷이 두어 벌은 더 있었고, 한 계절에 한 번쯤은 목욕탕에 가기도 했다. 게다가 밤마다 엄마가 씻어 주었으므로 냄새가 날 리도 없었다. 그러나 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한눈에 나를 알아챘다. 그들은 내 옆을 지나갈 때 슬쩍 비켜섰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꺼려했다. 혹여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핸드백을 힘주어 쥐거나, 혹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부터 확인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희한하지, 나는 거울 앞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나를 훑어보았다. 낡은 옷차림을 제외하면 길에서 보는 내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데.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들은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를 흘깃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개의치 않고 거울 앞에서 표정 바꾸기 놀이를 했다. 착한 어린이 표정, 나쁜 어린이 표정, 불쌍한 어린이, 우는 어린이, 싸가지 없는 어린이, 섹시한 어린이. 씨발, 자꾸 쳐다보지 말라니까! 나를 훔쳐보던 여자들이 놀란 눈으로 화장실을 나갔다. 하루는 늘 심심해서 따분했지만 흰얼굴이 찾아오는 날은 특별했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조금 더 어린애처럼 보이는 천진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초점을 없애고 입을 약간 벌린 표정. 그리고 쏜살같이 화장실을 나섰다. 흰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 뒤면 나는 반짝이 스타킹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흰 얼굴은 늘 쪽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처음 갔던 날을 제외하고는 매번 다른 사람들이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며 방에서 나왔다. 대부분 남녀 둘이었지만 가끔은 남자끼리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흰얼굴에게 돈을 주고 구부정한 어깨를 더욱 낮게 기울어 사라졌다. 창문이 없어 환기를 할 수 없는 그 방에서는 눅진한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흰얼굴은 수건을 적셔 내 아랫도리를 닦아 준 다음에 나를 안았다. 나는 흰얼굴의 모든 것이 좋았다. 가끔씩 흥얼거리는 근사한 휘파람 소리, 내 배 위로 쓰러질 때 맡아지는 목덜미의 달콤한 냄새, 콘돔을 끼우는 흰얼굴의 긴 손가락마저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볼 수 있는 흰얼굴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흰얼굴은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엄마와 죽은 아빠에 대해서, 언제부터 역에서 살았는지, 벙어리 흉내를 왜 냈는지, 나의 하루 일과와 내가 역에서 보고 겪고 듣는 모든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나는 끊임없이 재잘댔다. 그러면 흰얼굴은 검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나의 이야기를 빼곡히 적었다. 소문처럼 칼이나 도끼, 돈뭉치가 들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흰얼굴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흰얼굴의 조용한 목소리와 나를 어루만지는 나긋한 손길은 언제나 따스했다.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흰얼굴의 가슴팍으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오천 원은 꼭 받았다.

누구도 흰얼굴처럼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래를 닦거나 콘돔을 쓰는 것도 흰얼굴뿐이었다. 욕을 하거나 내 뺨을 때리고서야 나를 안는 삼촌들이 있었다. 내 입을 손으로 막고 덤비는 삼촌들도 있고, 가끔은 지퍼를 내리고 다짜고짜 내 입에 쑤셔 넣는 삼촌들도 있었다. 담요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나는 바지춤을 올리면서 훌쩍이는 담요 아저씨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는 일이 재미있었다. 괜찮아, 아저씨. 괜찮아, 내가 비밀로 해 줄게. 그러면 담요 아저씨는 누런 이를 보이며 헤벌쭉 웃었다. 역에서는 만취해 횡설수설하는 아저씨가 내 앞에서만큼은 아가가 되어 무릎을 꿇고 울었다 웃었다 하는 모양이 우스웠다. 담요 아저씨는 그래서 만 원만 받았다. 흰얼굴은 오천 원, 다른 삼촌들은 담요 아저씨보다 더 줘야 했다. 나는 돈을 먼저 받은 다음에야 삼촌들을 따라갔다. 술이나 빵을 받고 쫓아가는 이모들처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사실, 흰얼굴이 주는 돈만으로 스타킹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킹을 가지게 되자, 치마도 사고 싶었고, 그러자 구두도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삼촌들과도 어울려야 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색 바랜 옷을 벗고, 반짝이 스타킹과 분홍색 주름치마, 그리고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꽃이 달려 있는 갈색 구두를 신고 걸으면 어린이가 아니라 아가씨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매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흰얼굴이 찾아오거나 삼촌들이 어깨를 매만지곤 했다. 물론 대부분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하루가 끝났다. 예쁘게 꾸미고 앉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가지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머리끈, 화장품, 핸드백, 여름이 오고 있으니 샌들도 사야 했다. 하지만 돈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늘 혼자 돌아왔고, 오천 원을 쥐어 주는 흰얼굴은 너무 천천히 나를 찾아왔다.

나 할 이야기가 있어.

가만히 있어봐, 목에 때 좀 봐라. 도대체 하루 종일 뭘 하고 돌아다닌 거니.

엄마, 엄마, 나 할 말이 있어.

조용히 해. 흘리지 말고 먹어.

엄마, 엄마.

쉿. 이제 눈을 감아.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엄마가 어느새 슬그머니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여름이 가까이 와 있었다. 나는 자꾸 땀이 났다. 온 몸이 가려웠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 등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엄마. 나, 아가를 가졌어. 엄마의 등에서는 벌써 쉰내가 났다.

벌써 세 번째였다. 들키지 말아야 한다. 너무 가깝지 않게,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거리를 만들며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하철을 네 번이나 갈아탔다. 엄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내가 생전 와 본 적 없는 역에 내린 엄마는 물품보관함에서 짐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기둥 뒤에 숨어서 엄마를 기다렸다. 잠시 뒤, 한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여자는, 산발을 한 애꾸눈에 옆구리에는 접혀진 상자를 끼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여자가 멈춘 곳은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이었다. 지상과 지하의 연결로여서 거칠고 후텁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곳이었다. 계단에는 이미 몇 개의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여자는 품에서 바구니를 꺼내 무릎 앞에 놓고, 몸을 동그랗게 구부려 엎드렸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새 손과 얼굴은 먼지로 엉겨 있었고, 손톱도 새카맣게 때가 껴 있었다.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여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기둥 뒤에 숨어 여자를 오래 지켜봤다. 백 원, 십 원, 가끔 천 원짜리 몇 장이 바구니 속으로 떨어졌다. 지폐가 떨어지면 여자는 치켜들었던 손을 느리게 움직여 바구니를 더듬었고, 지폐를 움켜쥔 다음에는 재빠르게 주머니 속에 넣었다. 눈을 꾹 감고 있으면서도 용케 지폐를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니 지폐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동전 두서너 개만 바구니에 남아 있게 했다.

출근시간에 붐비던 역은 한산해졌고, 점심 무렵이 되니 사람들이 다시 많아졌다. 여자는 밥도 먹지 않고 그 자세로 계속 엎드려 있다. 다리가 저리지는 않을까. 나는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아팠다. 차르륵, 누군가 여자의 바구니에 동전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명랑하게 들렸다. 여자가 허겁지겁 바구니를 끌어안았다. 마치 하나라도 흘릴까봐, 혹은 누군가 훔쳐갈까 두려운 듯한 절박한 몸짓이었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듯이 계단 위에서 회색 모자들이 달려 내려왔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고함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여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여자는 꿈쩍없이 마지막 동전까지 긁어모았다. 여자에게 발길질이 쏟아졌다. 하지만 바구니마저 품에 넣고서야 여자는 그네들에게 끌려갔다. 채 도망치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여자처럼 잡혀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느새 계단은 조용해졌다. 나는 뒤돌아섰다. 엄마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역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화가 났다. 배가 너무나 고팠다. 아무나 붙잡고 하얗게 살이 오른 팔뚝을 물어뜯고 싶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도 아수라장이었다. 회색 모자들이 삼촌들을 내쫓는 날이었던 것이다. 욕설과 비명, 구령 소리와 사이렌 소리까지 뒤섞인 가운데 여기저기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양복쟁이들은 연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 대합실이 한눈에 보였다. 발길질을 당하거나, 회색 모자와 싸우거나, 끝까지 버티다가 질질 끌려가는 삼촌들과 이모들이 보였다. 멀찍이서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는 역무원들이 있었고, 기차나 지하철을 타기 위한 승객들, 그리고 저기 흰얼굴도 보였다. 나는 흰얼굴에게 다가갔다.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오기 시작했다.

흰얼굴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입에는 만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쩌면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었다.

“아저씨 난 여기가 싫어.”

“누구나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살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흰얼굴은 젓가락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이 인분을 먹었다. 떡볶이도 한 접시를 더 먹고 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그런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난 아가를 가졌어.”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교복 입은 여자 애들이 깔깔거리고 있었다. 나는 교복들을 노려보았다.

“엄마한테는 얘기했니?”

교복들의 가지런한 종아리가 눈부셨다. 나는 배가 불렀는데도 자꾸 화가 났다. 세상에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억울했다. 교복들이 재깔이며 분식집을 나가자마자,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저씨랑 같이 살면 안 될까? 난 아빠가 필요해.”

나는 흰얼굴을 따라갔다. 버스에서도 거리에서도 흰얼굴은 단 한순간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흰얼굴의 뒷모습만 보며 걸었다. 녹색지붕의 3층 건물 앞에서 흰얼굴이 멈춰 섰다.‘여성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싫어, 이런 데는.”

“여기라면 너를 받아 줄 거야. 아빠는 없지만.”

“이런 데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어.”

“누가?”

“이모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서 다 알아.”

“가든지, 말든지. 엄마랑 함께 가도 돼.”

엄마? 나는 잠시 머뭇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도 나는 자꾸 더웠다. 멀미를 하듯이 속이 울렁거렸다.

“갈 거면, 지금 가야 하나?”

“네가 원할 때 가.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배가 부른 여자 둘이 건물에서 나왔다. 나는 얼른 흰얼굴 뒤로 숨었다. 여자들의 부른 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창문에 반사된 햇빛이 정면으로 내 얼굴을 쏘아보았다. 말끔하게 닦여진 창문이 두려웠다.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 아빠가 아니니까, 네 마음대로 해. 흰얼굴의 대답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아빠가 싫으면 왕자는 어때? 흰얼굴이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역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엄마는 어김없이 12시에 시계탑 앞으로 왔다. 다른 날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날은 삼촌들과 이모들이 별로 없었다. 담요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모여들 것이다. 화장실을 점거하듯 떼를 지어 목욕을 하고, 흥이 난 삼촌들은 홀딱 벗고 대합실을 뛰어다닐 것이다. 그들은 싸우거나 울거나 혹은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잠이 들 것이다. 엄마는 나를 씻기고 담요를 덮어줄 것이다.

엄마가 내민 찰떡은 약간 쉰 듯했다.

“더 먹어.”

“이제 배 안 고파.”

“아파?”

“아니.”

엄마가 남은 두 개를 먹어 치웠다. 엄마의 볼은, 낮에 본 여자들의 배처럼 부풀어 있었다.

“엄마, 목욕가자.”

발갛게 살이 부어오르도록 때를 벗겨냈다. 엄마의 몸은 여기저기 멍 자국투성이였지만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찜질방에서 자는 날은 마치 천국에서 보내는 하룻밤 같았다. 푹신한 바닥, 공기 속에 맴돌고 있는 비누 냄새,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누구도 나와 엄마를 쳐다보지 않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크게 웃거나 뛰어다니지 않았다. 찰떡 두 개를 먹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자꾸 배가 고팠다. 엄마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나는 엄마의 번들거리는 얼굴을 보았다. 거지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엄마가 엎드려 있는 계단에는 그때처럼 꽃을 파는 아가씨, 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았다. 또각또각, 나는 고개 숙여 엎드린 엄마 앞에 섰다.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가 손을 조금 더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내가 가진 돈을 전부 바구니 속에 넣었다. 지폐 몇 장과 동전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구로 나섰다. 거리는 폭염으로 뜨거웠다. 반짝이 스타킹 때문에 아랫도리에 땀이 차올랐고, 치마는 자꾸 무릎에 엉겼다.

아빠는 죽었고, 엄마는 사라졌어요. 몇 가지 더 대답을 하고 병원에 다녀왔다. 이와 세면발이를 다 잡아내고서야 나는 언니들과 지낼 수 있었다.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받아들고 언니 넷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언니들은 모두 배가 불러 있었다.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모두 환하게 웃어 주었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침묵해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스타킹과 주름치마를 벗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고무줄 치마로 갈아입었다. 거울 앞에 서니 착한 아가씨처럼 보였다. 흰얼굴에게 나를 보여 주고 싶었다.

선생님들은 엄했지만 친절했고 언니들은 내가 어리다고 특별히 더 잘 대해줬다. 언니들은 곧잘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지만, 언니들이나 나나 별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이모들 말처럼 나쁜 곳은 아니었다. 직접 해 먹는 음식은 맛있었고, 건물 안의 모든 곳은 청결했다. 기상, 식사, 재활 교육, 자유, 수면으로 짜여져 있는 일과표를 지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재활 교육 시간에는 주로 컴퓨터를 배우거나 구슬공예를 했고, 가끔 강연회도 있었다. 혹은 악기 연주나 그림 그리기, 명상의 시간으로 채워지곤 했다. 오후는 늘 자유 시간이었는데, 대부분의 언니들은 일을 했다. 인형의 실밥을 떼거나 전선을 잇는 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딱 한 번, 엄마와 흰얼굴을 보았다. 자유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휴게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잡지를 뒤적이며 졸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면 좋을 가을 오후였다. 일부러 두꺼운 잡지를 골라 훑던 나는, 사진을 발견했다.

다섯 장에 걸쳐 나와 엄마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흰얼굴에게 말해 준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용처럼 나는 술이나 담배, 약을 하던 소녀는 아니었다. 또한 돈을 훔친 적도 없었다. 또래 남자 애들과 어울려 쪽방을 전전했다는 것도 틀렸다. 거긴 흰얼굴을 따라 간 적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것이 정말 나의 이야기가 맞는지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분명했다. 담요를 말고 웅크려 자는 나의 감긴 눈꺼풀, 아가씨 옷을 입고 대합실에 앉아 있는 내 뒷모습, 삼촌들과 어울리고 있는 풍경과 먼발치에서 찍은 공사장에서 뒤엉켜 있는 나와 담요 아저씨까지. 구걸하고 있는 엄마를 기둥 뒤에 숨어 훔쳐보고 있는 나의 굳은 입술, 심지어 배가 솟은 내 옆모습도 찍혀 있었다. 그건 모두 거짓말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이었다. 맨 끝에는 넥타이를 매고 있는 흰얼굴의 사진과 이름이 실려 있었다. 그제야 나는, 흰얼굴이 나의 아빠도 나의 왕자도 될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봄이 되어 나는 아가를 낳았다. 아가를 데려가는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나도 아가처럼 녹색지붕을 떠나야 했다. 내가 가진 건 들어올 때 입었던 옷뿐이었다. 너무 작아져 버린 옷을 갈아입다가, 나는 보았다. 우뚝 솟은 검고 단단한 젖꼭지. 나는 엄마를 닮아 있었다.

언니들과 선생님들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배웅을 했지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를 했지만,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 엄마는 일 년 전처럼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천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아 굳어버린 돌덩이처럼, 검은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던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엄마의 바구니에 동전 두 개를 넣고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꽃무늬가 팔랑거리며 지상의 환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저 아가씨도 아가를 낳으러 가는가 보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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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열세살/김이설

네이버 블로그를 하던 시절,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알게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전부터 요즘 유행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었는데 꽤 반응이 좋았다. 내가 그를 만난건 팔로워가 몇 없을 때였는데 금새 몇 천 단위로 늘어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블로그에서도 연을 맺었고 나의 날 것인 글도 다 읽는 사이니까 실제의 친구보다도 어쩌면 더 가깝다거나 하는, 그런 기분이 멋대로 들었다. 몇 개의 계정을 갈아타면서도 그는 소박한 팔로우 목록에 나를 꼭 넣어주었고(사실 나는 헤비 인스타그래머도 아니었고 태그도 귀찮아하는 그저 그런 일상 계정이었으니 그런 사람이 날 팔로우 한다는 것에 괜히 으쓱했을지도 모르지), 늘 서로의 사진에 댓글 몇 자, 가끔 메시지 핑퐁도 했다.

어느새 툭 하고 없어져 버렸더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순간 그는 날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습관적으로 계정을 옮기는 텀에 나는 그만 걸러져 버린건지. 여튼, 그랬다. 요즘 SNS라는게 좋아요도 쉽고 팔로우도 참 쉽다. 버튼 한번만 틱 누르면 되니까. 근데 그만큼 관계를 끊는 것도 쉽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별 부담이 없다. 물론 나도 온라인에서 만났으니(오프라인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지만) 지나가는 사이일거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비가 오면 빗길을 조심하라고, 눈이 오면 운치있다고 자주 조각을 나누던 사이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이었나 싶다. 내 집에 두고간 양말이라던지 선물해준 물건들이라던지 그런 흔적이 남는 실제 관계와는 다르게 온라인에서는 삭제 후엔 영영 끝.
일은 없고 졸리운데 눈치는 보여 예전 블로그를 되짚다보니 그녀의 댓글이 있길래 또다시, 허탈했다.
다들 비슷하게 쉬울까? 나만 이렇게 더운 날 스판 바지처럼 질척이며 들러붙는걸까?

잃어버린 만큼 다시 우산을 샀어요. 미안해요. 두고 온 것도 잊었지 뭐에요.

우르르쾅쾅 비가 왔다. 집 앞에 있는 백반집에 가자마자 비가 왔다. 예쁜 주인 아주머니는 안 계셨다. 나는 제육볶음을 시켰고, 창현이형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았다. 곧 주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배달을 다녀오신 모양이다. 출발하실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오는 길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비를 쫄딱 다 맞으셨다.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나한테는 우산이 없었고, 그래서 언제 비가 그치나 창 밖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삼 분 정도 앉아 있다가 비를 그냥 맞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색티가 진해지고, 회색 신발이 까맣게 변하는 모습을 잠깐 상상했다. 양말은 축축해지고, 머리에는 송글송글 빗방울이 기분나쁘게 한 자리씩 차지하는 걸 상상했다. 그치만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결심을 하고 일어서서 계산을 하는데 예쁜 주인 아주머니가 식당 구석 어디에서 우산을 찾아서 손에 쥐여주셨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셨는데 수원이라고 말했다가 잠시 정적이 흘러 바로 여기 뒤에 빌라에 산다고 말했다. 낡은 비닐 우산.

집에 가면서 신발한테 말을 했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그럴 것 같어. 그렇게 말했다. 신발은 흠뻑 젖었다. 회색 신발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예쁜 아주머니 덕분에 회색 티셔츠는 진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일요일에도 이렇게 비가 왔었다. 천둥이 치고 번개도 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비가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 비가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

우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쳐있었다. 왼손으로 그 우산을 만지작거리면서 걸었다. 얼마전 피시방에서 본 우산들이 생각이 났다. ‘중고 우산 5000원’이라고 적혀있고 몇 십개의 우산들이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 놓고 간 우산들이 팔리고 있었다. 비가 오다가 그쳐서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일기예보가 처음부터 틀려서 챙기고 나온 우산을 한 번도 펼치지도 않고 잃어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인 잃은 우산들이 아무튼 거기에 서 있었다. 내가 쥐고 있는 우산도 누군가가 식당에 놓고 간 우산이겠지.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신발만 젖었다. 그러다가 내가 놓고 온 수많은 우산들이 생각났다. 예쁜 기억들이 생각났고, 예쁜 표정들이 생각났고, 예쁜 말들이 생각났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어쩌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마음에 놓고 온 것들이 옷장 속에 구겨 넣어 두었던 옷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놓고 온 우산이 무엇이 되었든, 그게 말이든, 말투이든, 기억이든 뭐든 간에 이렇게 비가 세게 내리는 날에 그 사람들도 예쁜 주인 아주머니처럼 다른 사람들한테 누가 놓고 간 우산을 손에 쥐여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게 너무 낡진 않았을까, 찢어지지는 않았을까, 혹시 녹이 슬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함께 해 보았다.

언제 나는 예쁜 눈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제 나는 그만 똑똑한 척을 할 수 있을까. 언제 나는 그만 미워할 수 있게 될까. 언제 나는 그만 무시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솔직할 수 있고, 언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함께 해 보았다. 내 안에 가득한 모순들이 언제 합의를 보게 될까. 엄마가 생각 났고, 굳이 이름을 꺼낼 필요가 없을 여러 사람들을 생각했고, 친구들을 생각했고, 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길을 걸었다. 왼손으로 우산을 만지작거리면서 길을 걸었다.

무섭지 않은데, 눈물나게 무서운 꿈을 꿨다. 샤워를 하는 내내 눈물이 자꾸만 펑펑 나서 얼굴을 벅벅 닦았다. 나는 센서등이 고장난 현관에 앉아 울고 있었고, 옆에서 누가 자꾸 나는 그만 울래, 나는 그만 울고 싶어 하고 중얼거리는 꿈이였다. 바닷가도, 강가도, 연못가도 좋으니 어디든 물가에 가서 보싸노바를 크게 틀고 편한 의자에 파묻혀 있고 싶다. 물가로 가자 물가로.